고통과 변화와 탓

분자 구조 단위로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결국 나머지는 그 뒤치닥거리, 혹은 그 데미지를 안고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탐구이자 탐험일 뿐이다. 결국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 뿐이다. 그런데 분자 구조를 변화시킨 건 혹시 알코올일까? 같은 쓸데없는 의심도 해 본다. ‘탓’만큼 해로운 것도 없지만, 그래도 만약 그걸 기어이 해야겠다면 무생물로… Read more 고통과 변화와 탓

남아 있기

미투 운동의 일환으로 서지현이라는 검사가 자기가 겪었던 성폭력과 인사 불이익에 관한 글을 올린 게 화제다. 직접 얼굴을 내밀고 티비 인터뷰도 했는데, 그게 얼마나 어렵고 리스크가 있는 일인지 알기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많은 이들이 지지한다. 너무도 명백하니까. 어쩌면 이렇게 말만 제대로 하면 어느 쪽이 불의인지 뻔한 이야기들도, 옆에서 수 없이 당하고 마는 다른 여자들처럼 될까 싶은… Read more 남아 있기

육체의 일

고통에 관한 생각들을 멈춘 적은 없지만 그래도 꽤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하루키가 쓴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 무언가 근원적인 감동이랄까 울림이랄까를 좀 느꼈다. 막 되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근원적인’ 울림이라는 것들의 영역은 별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런 것을 느꼈던 건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을 보면서였다. 뽀로로네 팀이 무시무시한 실력자들과 함께 슈퍼썰매 경주를… Read more 육체의 일

인간 혐오

결국 인간이라는 종의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총기난사 같은 것들로 이어지는 정신병리가 시대적 증상이라고 하고, ‘혐오’라는 표현이 다양한 어휘들과 짝지어 돌아다니고. ‘본 때를 보여주마’ 같은 태도로 남들도 쏘고 자기 자신도 쏘고 장렬히 죽어버리는 사람들을 집어삼킨 건 인간 혐오가 아닐까 생각한다. lil’pain

외로움

세상에 보편적인 감정 하나가 있다면 외로움이라 하겠다. 그냥 그럴 것 같다. 슬픔도 있고, 아픔도 있겠지만 나이와 성별과 직업과 계급을 가리지 않는 건 외로움이 아닐까 싶다. 도망치고 뒤덮고 마주 앉았다가 뭔가로 채워 보려고 해도 외로움은 반드시 스멀스멀 기어들어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건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지면 짙어졌지 결코 어디 가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다. 집에도 전화기에도 일터에도 사람이… Read more 외로움

호기심

여전히 호기심이 가는 일이 있다는 것,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재미가 있는 거겠지. 반면, 지루한 것들, 뻔한 것들, 아무런 용기도 목적도 없이 오직 두려움과 눈치로만 움직이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아직 그려지지 않은 그림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마치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매일매일 그런 벽을 마주하면서도 찾는 가치들을 믿고 놓지… Read more 호기심

공상과학의 오판

‘메타 인지’라는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깨달은 점. 낭만적이게도 많은 미래공상과학물들은 너무 잘 만들어서 인간화된 기계, 또는 복제인간의 영혼 같은 것들을 주제로 삼아왔다. 모든 공상과학물은 실제로 다가오는 미래 기술들의 예기치 못한 버그에 관한 것이라면, 이 이야기들이 찝어낸 버그와 딜레마는 기계가 인간을 모사할 때 어디까지를 기계로 치고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쳐야 하는지의 질문이었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Read more 공상과학의 오판

프라이드의 원천

그 어느 때보다 같은 인간으로서 갖는 유사함의 가치가 더 커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인간성에 대한 옹호가 ‘철’이 지난 건 아닐까 같은 생각들도 종종 한다. 때때로 경멸에 찬 지성인들이 새 시대의 무지함을 벌레보듯 깔보는, 오만이 넘치는 프라이드가 느껴질 땐 나도 모르게 몸서리친다. 그들이 갖는 자기 확신은 객관화가 결여된 자기 확신이다. 뭔가를 깔보려면 확실한 우위가 있어야… Read more 프라이드의 원천

모기라는 그 존재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이다. 여름 내내 게을러서 나가지 못했던 아쉬탕가 요가 수업을 나갔다. 그날 따라 강사는 빈야사와 숨과 흐름 같은 것들을 강조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명상 수련처럼 집중하는 게 전부다, 뭐 그런 맥락이었다. 힘은 들었지만 최선을 다해 그 ‘흐름’이라는 것에 한참 빠져들 무렵, 눈 앞으로 그것이 지나갔다. 그것은 급하지 않게, 여유롭게, 마치 요가 매트들 사이를… Read more 모기라는 그 존재